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이 서툰 종한은 아버지의 옛 친구였던 사진학과 교수를 찾아가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다. 한편, 예술을 그만둔 전직 작가 시연은 우연히 찾은 갤러리에서 환상 속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며 잊고 있던 욕망을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버려진 폐허와 스산한 도시를 떠돌며 카메라를 들던 종한은 정체불명의 청년 민수를 만나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게 된다.

세상을 떠난 아빠의 흔적을 찾아 한국에 도착한 한 남자가 있다. 유령처럼 유영하듯 다양한 장소와 사람들을 품은 그의 나른한 여정은 결국 끊을 수도, 끊어지지도 않는 부모에게로 귀결된다. 세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남자의 심상을 담은 사진, 그라피티, 그림 등의 예술적인 모티브가 챕터를 넘나들며 신비롭게 교차하고 조응한다. 극중극을 통해 전혀 다른 두 개의 서사를 포개어 이어 붙이는 시도나 인서트, 분할 편집, 디졸브의 실험적인 활용에서 감독의 야심이 느껴진다. 비선형적인 전개가 다소 산만하게 비칠 수 있지만, 롱테이크 등으로 빚어내는 씬의 묵직한 힘에 묘하게 압도된다. (이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