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멸’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들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경쟁 장편 '듣는 건 너의 책임' 리뷰 |
듣는 건 너의 책임 Listening to Us Is Your Duty | 유최늘샘 Yoochoi Neulsaem Korea | 2024 | 93min | DCP | Color | Documentary | World Premiere |
‘듣는 건 너의 책임’. 인구 13만의 작은 도시 통영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인디밴드의 이름이다. 멤버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책방 ‘너의책임’에서 따왔다지만 어딘가 ‘뻔뻔해 보이는’ 이름이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뿐이니 듣고 말고는 당신 책임이라는 데서 오는 ‘뻔뻔함’ 말이다. 괜히 호기심이 인다. 그리고 영화는 이 뻔뻔함을 너끈하게 초과해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가 소도시 통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서정적인 음악과 아름다운 영상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역‧청년‧음악‧영화가 자연스레 어우러져 상승 욕망만이 들끓는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다른 삶의 양태와 목소리가 구체화된다. |
90분짜리 통영 올 로케 뮤직비디오의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통영 풍경과 밴드의 노래가 이어지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청량하고 따스하다. 그러나 동시에 첨예하다. 영화 말미, 밴드 공연장에 참석한 청년 관객은 말한다. “이렇게 많은 통영 사람들이 있다니!” 이 말은 각자의 이유로 통영에 살아가는 청년들의 네트워크가 취약함을 대변한다. 이들은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왜일까? 왜 이미 곁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지역 청년과 일상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만 연결되는 걸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역 소멸’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횡행하고,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몰린다는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진다. 필요한 분석이고, 일부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종 함부로 유통되는 이런 말들은 지역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축시켜 움츠러들게 만들기도 한다. 자기 옆의 또 다른 청년에게 다가가 관계를 형성하는 대신 지역에서의 삶을 음울하게 되돌아보게끔 추동하는 것이다. |
밴드 멤버들은 자신에게 통영이 어떤 의미인지를 들려준다. 통영은 누군가에게는 아이를 키우기에 완벽한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잠깐 쉬러 들렀다가 정주하게 된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생계의 근간을 이루는 일터이다. 당연하게도, 멤버들의 사연은 고유의 결을 가지며 때로는 접속하고 때로는 독립적이다. 우리가 ‘지역 소멸’을 말할 때 놓치는 건 바로 이것이다. ‘지역 소멸’이라는 말은 이미 홀로 또는 함께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그래서일 것이다. ‘듣는 건 너의 책임’의 노래가 가슴 깊은 곳에 박혀 은은한 감동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이유는. 아마추어 인디밴드가 결성되고, 노래를 만들고, 공연하는 과정을 정감 있게 담아낸 영화의 여정은 지역 청년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삭제된’ 목소리를 되찾는 분투이기도 하다. |
멤버들이 통영에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이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항상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멤버들의 통영 서사에는 늘 서울과 대도시가 등장한다. 통영 생활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마찬가지다. 이는 지역에서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수도권 대도시에서의 삶을 경유해서만 가능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주변’과 ‘중심’이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지역에서의 삶이 독립적으로 오롯이 존재하지 못하고 ‘중심’을 통과한 이후에만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권력관계를 인지한 후 솟아나오는 지역의 역설적 자기 인정은 기존 위계를 질문하는 자원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기존 담론은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에서 자본주의 경쟁 문화가 포섭하지 못하는 ‘재미’를 추구하며 성장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석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듣는 건 너의 책임’은 프로/아마추어, 중심/주변의 경계를 오가며 자기들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
이 영화는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감동적이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음악의 힘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그러나 밴드 멤버들이 청년이고, 밴드가 활동하는 곳이 소도시라는 점은 필연적으로 영화의 감동을 더 넓은 고민으로 확장시킨다. 유쾌한 도전을 ‘분투’로도 해석할 여지가 자꾸만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이 ‘다양함’의 범주와 경계는 질문하지 않는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듣는 건 너의 책임〉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지역 소멸’을 말하기 전에 이 영화를 보자. 연결된 사람들이 무언가를 즐겁게 해나가는 모습에서, 지금과는 다른 삶을 빚어낼 ‘오래된 미래’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하이스트레인저 박해민
-9월 6일(금) 19:00 세명대 태양아트홀 -9월 9일(월) 16:00 세명대 태양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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