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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영화를 향한 그의 사적인 고백

작성자제천국제음악영화제

작성일24-09-09

조회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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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향한 그의 사적인 고백

<리퀘스트> 최인규 감독 인터뷰

영화 <고백할 수 없는>으로 데뷔한 최인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았습니다. <리퀘스트>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LP 바 사장님 '준호'의 가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최인규 감독은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한 영화인이면서, 실제로 망원동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동명의 LP 바를 운영 중인 사장님인데요. 자연스레 주인공 '준호'와 겹쳐지는 그는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구성 속에 자전적인 경험을 녹여 사적인 고백을 전합니다. 제천예술의전당에서 최인규 감독을 만나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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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더 파인트’라는 LP 바를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준호’도 영화인을 꿈꾸며 바를 운영하고, 극 중에는 <리퀘스트>라는 동명의 시나리오를 읽는 장면도 나오죠. 감독님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과 배경인데요. 어떻게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리퀘스트'는 중의적인 표현이에요. 이 영화가 '정시내의 영화 음악'을 신청하는(request) 어떤 묘령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텍스트라면, 서브 텍스트는 사실 제게 묻는 질문인 거죠.

20년간 영화 이력을 쌓아왔지만, 처음부터 영화를 한 건 아니었어요. 광고 회사에 있다가 뒤늦게 영화를 하고 싶어서 유학을 다녀왔어요. 다녀와서 프로듀서나 연출 일을 하다가 9년 전에 <고백할 수 없는>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요. 그런데 생각만큼 자주 작품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하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움과 회한으로 남았어요. 그런데 나이는 자꾸 먹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잖아요. 한 번쯤은 저 자신에게 질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에 관한 이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영화에 담는 게 부끄럽기도 해요. 영화에도 "너무 사적이고 작은 이야기 아닐까요?"라는 대사가 나오죠. 실제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그래도 자랑스럽지 않더라도 어찌 됐든 한 번은 내 이야기를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리퀘스트>를 썼어요. 

LP 바에서 <리퀘스트> 시나리오를 쓰는 '준호'처럼, 감독님께서도 LP 바에서 이번 이야기를 쓰셨나요? 

네, 사람들이 없을 때 썼습니다. 사실 제 가게가 영화인들의 아지트예요. 시나리오를 쓰다가도 영화인들이 가게를 찾아주고 그랬죠. 그래서 이번 작품에 가게 손님들로 와주신 분들이 스태프로 많이 참여했어요. 독립 영화에서 쉽게 쓸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스태프들인데,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촬영이 정말 잘 나왔습니다. 

전작 <고백할 없는>사회의 축소판인 집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였는데, 이번에도 LP 바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이야기를 다루셨어요.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고 계시네요. 

한정된 공간은 심리적인 스펙터클을 끌어내는 데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예산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야외로 나가는 순간, 촬영 회차가 늘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로드무비를 굉장히 좋아해요. 다음 작품은 꼭 밖에서 찍어보려고 해요. 

평소 호기심이나 관찰을 통해 작품의 영감을 많이 얻으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도 호기심과 관찰이 발동된 지점이 있었나요? 

 물론 호기심과 관찰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자전적인 이야기에 상상을 더하려고 했어요. 바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상상을 한 번 해보는 거죠. '이 시간에 묘령의 여인이 바에 온다면?' 이런 상상들을 섞어서 이번 작품을 완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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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 인물과 인물들이 마구 섞이는 구성이 정말 인상적인데요. 과정에서 피어나는 미스터리도 흥미롭습니다. 

 전형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구성 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장면을 전환할 때,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이나 확장된 동공을 잡는 등의 표현들이 많잖아요. 이런 것들은 관객에게 영화를 이해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저는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넘겨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현관에 매달린 종을 이용해서 전환한다든지, 사운드나 시선에 변주를 준다든지, 패닝을 자주 이용했어요. 수평의 움직임으로 시간과 지나간 것들에 대한 회한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면도 있고요. 하지만 손을 떠나면 퍼즐을 가지고 노는 언제나 관객들의 몫이에요.

같은 배우들이 다른 배역으로 계속 등장하며 미스터리를 강화하기도 합니다. 1인 3역의 고은민 배우, 1인 2역의 송재림 배우, 그리고 주변인에서 사건의 중심으로 점점 스며드는 박호산 배우까지, 배우들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되셨나요? 

 캐스팅에 시간이 꽤 걸렸어요. '준호'는 40대 중반의 일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몇 명을 후보에 두고 있었는데, 박호산 배우가 시나리오를 좋게 보시고 연락을 주셨죠. 송재림 배우는 박호산 배우와 상반된 이미지인 사람, 그리고 일상보다는 판타지가 맞는 배우를 찾으려고 했어요. '은영', '연주', '수정' 역을 표현했던 고은민 배우는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우연히 봤는데, 괜찮아서 딱 찍었어요. 정말 바에 앉아서 혼술할 수 있는 사람일 거 같더라고요. 고은민 배우에게는 1인 3역을 계산하면서 연기하지 말고, 장면들을 편하게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대신 판타지인 장면은 일부러 대사를 문어체로 쓰는 식으로 변화를 주었죠. 

미스터리가 중심이 되지만, <리퀘스트>줄기를 이루는 것은 사랑 이야기예요. 부분이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라고 느껴지는데요.

제가 러브 스토리를 대단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장르 영화를 더 좋아하죠. 그러나 인간의 감정을 가장 은밀하게 담을 수 있는 건 결국 멜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진한 사랑 이야기로는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그런 걸 못하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고 관객에게 오로지 맡겨야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진폭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중에 <인생은 아름다워>, <클로저> 등의 명작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시도 속에도 전형을 만든 명작들을 향한 감독님의 존경심이 엿보여요. 

 영화를 배우고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게 영감을 주었던 영화들을 오마주하고 싶었어요. 음악도 그렇고요. 마이클 잭슨이나 양희은 LP 앨범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시킨 거죠. 결국엔 <리퀘스트>도 지나간 영화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영화니까요. 영화를 향한 일종의 고백이에요. 

작품은 회한과 출발을 이야기하지만, 장면 곳곳에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향한 추앙이 담겨 있어요. 감독님께서 생각하는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궁금해집니다. 

영화인으로서 관객과 만나는 것, 그게 진짜 아름다운 것 같아요. 영화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잖아요. 극 중에서 '준호'가 특별한 순간이라면서 사진을 찍어 기억하는 것처럼, 관객에게도 제 영화를 통해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다면 그것으로 기분이 너무 좋은 거죠. 작고 소박한 순간일지도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아름다운 순간이에요. 제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금 이 순간, 2024년의 제천도 아름답게 기억될 거예요.

글: 하이스트레인저 방해리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소현